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의 이야기
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는 당연히 콘도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. 이미 집값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 어렵게 콘도를 계약했고, 그곳에서 꽤 만족스럽게 지냈다. 하지만 재계약 시점이 되자, 우리처럼 렌트로 살던 집주인도 결국 “직접 살아야겠다”는 연락을 해왔다. 같은 콘도에 살던 이웃이자 좋은 집주인이었는데, 그 당시 "싱가포르에 오래 살 계획이라면 집을 사는 게 낫다"는 조언을 해주었다.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았던 것 같다.
2년 전에는 집 물량이 부족해 거의 경매식으로 뷰잉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고, 뷰잉하기 전에 오퍼를 넣는 일도 흔했다. 그때는 집을 보러 다니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고, 육아와 모유수유를 병행하며 장염까지 겹쳐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. 그러다가 한국으로 떠나기 1-2주 전쯤, 그나마 괜찮은 집을 구했던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.
HDB에서의 생활
살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. 어떤 점은 만족스러웠고, 또 어떤 점은 하루빨리 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. 그래도 나름대로 잘 적응하며, 잘 지냈다고 생각한다. 아이는 이사 온 직후 이유식을 시작했고, 지금은 2살이 넘어 프리스쿨까지 다닐 정도로 많이 컸다.
이번에 집 계약을 연장할지 새집을 구할지 고민은 잠깐이었다. 결론은 역시나 이사가자. 그렇게 이사를 결정한 이야기의 시작이다.
HDB에서 생활하며 알게 된 것들
처음에는 모든 HDB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지만, 실제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경험해보니 집마다, 건물마다 구조와 상태,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 지금 살고 있는 HDB에서 느낀 점들을 아래에 정리해본다.
이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참고 정도로만 봐주세요 😊
1. 현관과 보안: HDB와 콘도의 차이
- 현관 구조: HDB는 보통 두 개의 현관문을 사용한다. 안쪽 문은 내부에서 키 없이 잠글 수 있고, 바깥쪽 철문은 대문처럼 키로 잠가야 한다. 처음에는 이런 구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지만 곧 익숙해졌다.
- 벨 설치 여부: 콘도는 기본적으로 초인종이 설치되어 있지만, HDB는 초인종이 없는 경우가 많다. 우리 집도 벨 없이 살고 있는데, 방문객은 미리 연락하거나 배달은 앱이나 메시지로 소통하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다.
2. 거실 구조와 채광
- 처마와 채광: 현재 집은 복도형과 코너형 구조가 혼합된 형태다. 윗층이 복도형이면 아래층에는 처마가 생겨 비와 열기를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. 하지만 처마 때문에 낮에도 채광이 부족해 집이 어두운 단점도 있다.
- 반자 높이: 싱가포르 콘도나 한국 아파트에 비해 반자가 낮아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.
- 기타 거실 환경: 형광등이 깜빡거리거나 LED로 교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, 처음에는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실링팬이 에어컨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.
3. 화장실: 구조와 환기
- 환기와 습기: 화장실은 판상형 구조라 환기는 잘 되는 듯했지만, 싱가포르 특유의 높은 습도로 인해 항상 눅눅한 느낌이 들었다.
- 구조적 문제: 세면대와 변기의 크기가 작고 높이가 낮아 사용하기 불편했으며, 노출된 온수 파이프는 아이에게 위험하다고 느껴졌다. 윗집에서 물 쓰는 소리가 들리는 배관 구조도 개인적으로는 불만족스러웠다.
4. 주방 구조
- 레이아웃과 후드 성능: 주방은 ㅡ자형 구조로 넓지만 동선이 비효율적이었다. 후드는 실외로 환기되지 않아 냄새가 실내에 머물러 창문을 열어야 했다.(후드를 잘 보면 맨 위에 구멍이 있는데, 안의 팬이 돌면서 그냥 그 구멍으로 쿡탑위의 공기가 위로 도는 구조)
- 온수 문제: 주방 싱크대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아 불편했다. 결국 식기세척기를 구매해 사용 중이다.
- 쓰레기 처리: 오래된 HDB는 집 내부에 쓰레기 배출구가 있지만, 위생 문제로 막아둔 상태였다.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.
5. 에어컨과 배관
- 소음과 위치: 에어컨 실외기가 마스터룸 창문 바로 아래 벽면에 설치돼 있어, 작동 시 소음이 신경 쓰였다. 때문에 마스터룸에서 초반에만 침대를 사용했다.
- 배관 노출: 실내 배관이 노출된 구조도 좀.. 거슬린다.
6. 집 상태와 청결
- 곰팡이와 벌레 문제: 계약 후 방에 곰팡이가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충격이었다. 직접 소독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. 벌레도 자주 나타났는데, 먼지더듬이, 깡충거미, 개미, 도마뱀 등 다양한 벌레들을 종종 마주쳤다.
- 노후화: 벽에 금이 가거나 깨진 부분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, 전반적으로 오래된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.
7. 외부 환경
- 냄새 문제: 옆집이나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었다. 특히 고스트 페스티벌 등 전통 행사 때 태우는 냄새는 새벽까지 이어져 불편했다.
- 소음: 오토바이 시동 소리나 인테리어 공사 소음은 가끔 스트레스를 줬지만, 층간 소음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.
8. HDB 이웃과의 교류
- 지역 분위기: HDB는 콘도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느낀다. 1층 필로티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열리기도 했는데, 이런 문화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.
- 이웃 관계: 처음 이사 왔을 때 옆집과 잡채, 김치전, 쿠키 등을 나눠 먹기도 했다. 지금도 인사하며 지내고, 다른 층에 사는 "하오 할아버지"와도 자주 인사한다.
아이들과의 교류: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.
집 연장 대신 이사를 결심한 이유
HDB 생활을 하면서 여러 불편함을 겪으며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. 아이가 성장하며 더 밝고 쾌적한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음. 이사를 결정하며 새 집의 조건을 생각해봤는데,
- 채광: 특히 거실 기준으로 밝고 개방감 있는 구조.
- 건축 연식: 지금보다 새로 지어진 집.
- 월세: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.
결국 HDB든 콘도든 가장 중요한 건 집이 얼마나 잘 관리되었는지인 것 같다.
아직 계약이 끝나려면 두달이나 남았지만, 바로 매물 찾아보고... 곧이어 뷰잉 시작!
댓글